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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로비' 포스터 |
이 영화 비현실적인데 현실적이다.비현실적인 캐릭터들이 현실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연기하며 그 속에서 느껴지는 불편함, 괴리감, 공감으로 웃음을 전한다. 하정우표 말맛 개그를 좋아한다면, 킬링타임용으로 좋은 영화다.
영화 '로비'는 연구밖에 모르던 스타트업 대표 창욱(하정우 분)이 4조 원의 국책사업을 따내기 위해 인생 첫 로비 골프를 시작하는 이야기. 골프에 '골'자도 모르던 창욱이 골프장에서 로비를 하는 모습을 그리며 웃음을 전한다.
착실하게 연구만 하며 회사를 키우던 창욱은 뛰어난 기술에도 불구, 과거의 절친이자 현재의 라이벌인 광우(박병은 분)에게 기회와 기술까지 뺏길 위기에 처한다. 특혜가 아니라 공정한 기회를 바랐던 창욱은 김 이사(곽선영 분)의 도움을 받아 국토교통부의 실세인 최실장(김의성 분)에게 골프 로비를 하기로 결심한다. 업계의 기자(이동휘 분)에게 뇌물을 주며 최실장에 접근하기로 한 창우는 최실장이 현재 슬럼프에 빠진 젊은 미녀 프로 골퍼인 진프로(강해림 분)의 광팬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진프로에게 스폰서쉽 계약을 제안하고 로비 골프를 준비한다.
이런 가운데 창욱의 라이벌 광우는 같은 날 맞은편에서 국토교통부 장관인 조장관(강말금 분)을 상태로 접대 골프를 준비하고, 골프장 사장(박해수 분)와 그의 아내(차주영 분) 그리고 남자 배우인 마태수(최시원 분)까지 동원해 골프로 접대를 하며 이 한편의 소동극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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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로비' 스틸컷 |
영화는 마치 연극과도 같이, 하루 동안 골프장에서 벌어지는 골프 로비 이야기를 시간별로 보여주며 진행된다. 계급, 위계가 명확한 주인공들이 골프장에서 각자의 목표를 가지고 골프를 치는 모습은 우리 사회를 그대로 옮겨 담은 모습이다. 각자가 가진 욕망의 방향이 다른 곳으로 엉뚱하게 튀며 이야기의 웃음 포인트가 만들어진다. 골프 접대를 받으러 와서 여자 프로골퍼에게 대놓고 찝쩍대며 남자로 보이기를 원하는 권력자, 콩고물이 떨어지길 바라며 비위 맞추는 기자, 사회 생활을 견디다가 결국 폭발해버리는 젊은 여성 프로 골퍼, 로비를 해보겠다고 시작했지만 맘 먹은대로 되지 않은 상황에 망설이는 회사 대표. 일부는 현실적인 캐릭터들이 일부는 과장된 포장지를 쓰고 사회를 비틀어본다. 동시간대에 벌어지는 다른 골프 로비는 좀 더 과장된 캐릭터들이 더욱 상황을 비튼다. 점입가경으로 치닫는 상황들에 푹 빠지면 106분이라는 러닝타임이 훌쩍 간다.
감독 하정우는 욕심을 냈다. 많은 캐릭터들이 한 그릇에 담기다보니 삐죽삐죽 튀어나오기도 하지만, 후루룩 넘어가는 팝콘 무비로는 좋다. 메가폰을 잡은 하정우는 주인공 창욱 역을 맡아 영화 속에서도 사건의 중심에서 이야기와 캐릭터들을 이끌어간다. 현명한 방식이지만 캐릭터 자체로서의 매력은 조금 아쉽다.
쉴새 없이 흘러가는 상황 속에서 짝짜꿍을 맞춘 대사들이 흘러나오며 어이없어서 웃음이 터진다. 하정우표 말맛 코미디를 좋아한다면 저항없이 웃을 수 있다. 과장된 캐릭터들이 웃음을 전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불편할 수도 있다. 나이가 절반 밖에 안되는 여성에게 자신이 남자로 보이냐고 묻는 '개저씨'(개와 아저씨의 합성어로, 중장년층 남성 중에서 무개념인 사람을 비하하는 표현), 관념적으로 쓰여지는 여성 캐릭터 등이 관객들에게 어떻게 통할지 궁금해진다. 아, 골프는 전혀 몰라도 영화를 즐기는데는 문제가 없다.
4월 2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06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