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자부의 알맹이 없는 산업기술보호법 시행령 개정…고려아연, '제2 홈플사태' 우려

김혜림 기자 / 입력 : 2025.04.01 16:13
  • 글자크기조절
박기덕 고려아연 대표가 지난달 28일 서울 용산구 몬드리안 호텔에서 열린 제51기 고려아연 주주총회를 진행하고 있다.
박기덕 고려아연 대표가 지난달 28일 서울 용산구 몬드리안 호텔에서 열린 제51기 고려아연 주주총회를 진행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다음 달부터 약 한 달동안 산업기술보호법 시행령 등 일부 개정안에 대해 입법 예고에 나선 가운데, 일각에선 핵심 조항만 쏙 빠진 '맹탕' 개정이란 비판이 제기된다. 앞서 산자부는 지난해 12월 '제5차 산업기술의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종합 계획'을 발표하며, 외국인 인수·합병의 사각지대로 여겨지던 '외국인 지배 국내 사모펀드'에 대한 규제 강화를 약속했다. 하지만 정작 산자부가 발표한 시행령개정안에는 핵심 내용들이 모두 빠져 비판 여론이 확산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경쟁업체 등의 방해로 국가핵심기술 선정 자체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돼도 우회적인 기술유출 가능성이 상당하면서 법개정 취지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오늘(31일) 발표한 산업기술보호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 입법 예고 내용을 보면 국가핵심기술의 해외 유출 범죄에 대한 처벌을 대폭 확대했다. 구체적으로 국가핵심기술의 해외 유출 시 최대 15억 원의 벌금을 65억 원까지 확대하고, 처벌 대상을 목적범에서 고의범으로 넓혀 유출된 기술이 해외에서 사용될 것을 알기만 해도 처벌할 수 있도록 시행령을 개정했다. 또한 산업기술 침해 행위에 대한 손해배상한도를 기존 3배에서 5배로 올려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한 기술유출범죄를 예방하고 불법 이익 환수 등에 초점을 맞췄다.


다만, 이번 시행령 개정안에서 핵심 사안으로 꼽혀온 외국인 지배 국내 사모펀드에 대한 규제 조항들이 모두 배제되면서 논란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행 산업기술보호법에서는 외국인이 국가핵심기술 보유 기업을 인수·합병하는 경우 산업부 장관의 승인이나 신고 후 심사 절차를 받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외국인에 의한 실질적 지배를 받지만 국내에 등록된 법인인 경우 산자부 승인과 심사를 모두 받지 않아도 된다는 법적 맹점이 있어왔다.

가령 사모펀드 MBK의 경우 국가핵심기술 보유 기업인 고려아연을 인수·합병한다 하더라도 모든 규제망에서 비껴간다는 지적이 여러 차례 제기돼 온 바 있다. 사모펀드 MBK는 미국 국적인 김병주 회장의 실질적 지배를 받고 있고, 주요 임원 중 여러 명이 외국인이지만 법인 등록이 국내로 돼있어 고려아연 인수·합병 시도에도 따로 승인이나 신고 절차를 밟지 않아왔다.


산자부도 이러한 점을 고려해 지난해 12월, '제5차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종합 계획'을 발표하며 타법 사례 등을 고려해 외국인의 범위를 조정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즉 MBK처럼 국내에 등록된 법인이라 하더라도 외국인의 실질적 지배를 받는 경우를 '외국인'의 범주에 포함하도록 시행령 개정 방침을 밝힌 것이다.

산자부가 검토하게 될 타법 사례로는 '항공사업법'이 우선 순위로 거론돼 왔다. 항공사업법 제54조는 '외국인이 사실상 지배하는 법인' 이거나 '외국인이 대표 등기임원인 법인'의 경우 국토교통부 장관의 허가를 받아야만 국제항공운송사업이 가능하다고 규정돼 있다. 실제 MBK는 지난해 6월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 인수전에 뛰어들었지만, 해당 조항에 발목 잡혀 인수·합병 계획을 접어야 했다.

애초 산자부 발표대로라면 이번 산업기술보호법 시행령 개정안에도 이른바 '검은 머리 외국인'을 규제하는 방안이 담겨야 했지만 정작 핵심 내용들이 모두 빠진 것이다.

업계에서는 산자부의 '맹탕' 개정으로 인해 고려아연이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최근 MBK의 홈플러스 사태에서 보듯 고려아연도 '쪼개기 매각'과 '핵심 기술 유출'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영풍·MBK 측은 고려아연의 안티모니 생산 기술 등의 국가핵심기술 지정을 강하게 반대해 왔다. 이 때문에 해당 기술과 공정의 해외 매각 등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키우고 있다.

실제로 MBK는 지난 2015년 홈플러스를 인수한 뒤 알짜 점포들을 매각하는 방식으로 투자금 회수에 집중해왔다. 그 과정에서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이 뒤따랐고, 장기 경쟁력이 훼손된 홈플러스는 지난2020년부터 차입금 의존도 급증과 영업이익 악화 등 악순환을 반복하다 결국 지난 3월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갔다.

홈플러스 사태에서 유추할 수 있듯, MBK가 고려아연을 인수하게 될 경우 투자금 회수 수단으로 핵심 자산 매각이 1순위로 고려될 거란 지적도 나온다. 고려아연이 하이니켈 전구체 기술에 대해서만 국가핵심기술을 보유한 상황에서 니켈 제련 공정을 제외한 나머지 공정들에 대해 '쪼개기 매각'을 시도할 거란 전망도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핵심 기술 인력에 대한 구조조정도 불가피해 핵심 기술의 해외 유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산업부가 이제 막 입법 예고 단계에 들어선 만큼, 법률안 개정에 관한 의견을 좀 더 폭넓게 수렴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MBK 인수 후 고려아연이 보유하고 있는 국가핵심기술이 유출될 경우 이를 원 상태로 되돌리기 어려워지는 만큼, 추가 검토 절차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편 사모펀드의 천국으로 불리는 미국의 경우도 '외국인이 지배하는 법인'을 외국인으로 의제하고 있다. 미국 연방정부의 행정명령을 집대성한 연방규정집 'CFR(Code of Federal Regulations)'에서 외국인을 정의한 조항 '800.224'에 따르면 '외국인에 의해 통제되거나 통제될 수 있는 모든 단체(Any entity over which control is exercised or exercisable by a foreign national, foreign government, or foreign entity')를 외국인으로 규정하고 있다.

즉, 미국연방정부는 법인을 통제하는 사람이 외국인인 경우 해당 법인을 외국인으로 간주하고 있어 우리 산자부의 시행령 개정 방향과는 정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다.

최신뉴스

더보기

베스트클릭

더보기
starpoll 배너 google play app st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