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경과 김단비, 그리고 신인상과 두 개의 MVP

박정욱 기자 / 입력 : 2025.04.03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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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국생명의 김연경이 지난달 31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정관장과 프로배구 2024~2025 도드람 V리그 여자부 챔피언결정전 1차전에 출전하고 있다. /사진=뉴스1
흥국생명의 김연경이 지난달 31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정관장과 프로배구 2024~2025 도드람 V리그 여자부 챔피언결정전 1차전에 출전하고 있다. /사진=뉴스1
우리은행 김단비가 지난 2월 24일 서울 용산구 드래곤 시티 호텔에서 열린 2024~2025 여자프로농구 정규리그 시상식에서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를 수상한 후 소감을 밝히고 있다. /사진=뉴스1
우리은행 김단비가 지난 2월 24일 서울 용산구 드래곤 시티 호텔에서 열린 2024~2025 여자프로농구 정규리그 시상식에서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를 수상한 후 소감을 밝히고 있다. /사진=뉴스1
프로 스포츠 선수들은 빼어난 기량을 발휘하면 수많은 상의 주인공으로 무대에 설 기회를 갖게 된다. 여러 상 가운데 '본상'을 꼽는다면 정규리그(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와 신인상, 프로야구 KBO리그의 한국시리즈나 프로농구·배구의 챔피언결정전 MVP가 아닐까. 세계 팝음악의 최고 권위 시상식 '그래미 어워즈'도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앨범 ▲올해의 노래 ▲신인상을 '4대 본상'이라고 하지 않던가.

프로 스포츠 '3대 상' 가운데 어느 상이 가장 중요할까. 상은 모두 소중하고 경중을 따지는 것이 부질없지만, 최고의 선수에게 주어지는 MVP를 더 중시할 것이다. 그렇다면 정규리그 MVP와 챔피언결정전 MVP 가운데서는 어느 쪽에 더 무게가 실릴까.


정규리그 MVP는 한 시즌 동안 꾸준하게 우수한 개인 성적과 팀 공헌도를 기록했을 때 받을 수 있는 상이라 높은 가치를 지닌다. 챔프전 MVP도 일반적으로 우승팀의 최고 수훈 선수가 받는 상이기 때문에 '우승'과 함께 오는 영광이라 결코 뒤지지 않는다. '무관'의 설움을 씻기 위해 우승컵을 좇아 이적을 선택했던 축구의 해리 케인(토트넘→바이에른 뮌헨)과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의 오타니 쇼헤이(LA 에인절스→LA 다저스) 같은 사례가 있지 않은가.

여기서 질문을 조금 비틀어보자. MVP와 신인상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수상하기 어려울까. 선뜻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일 수도 있겠다. 어느 스포츠 종목이든 MVP가 더 높은 평가를 받겠지만, 신인상은 신인 자격을 갖춘 선수만을 대상으로 주는 상이라 수상 기회라는 측면만 따져보면 답을 내놓기 쉽지 않다. MVP는 시즌마다 정상급 선수들에게 기회가 열려 있지만 신인상은 일반적으로 단 한 번의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차지할 수 없다(일본 야구 레전드 스즈키 이치로처럼 리그를 달리해 일본프로야구와 MLB에서 모두 신인상을 받는 드문 예가 있기는 하다).

2024~2025 여자프로농구(WKBL) 정규리그 MVP 김단비(35·아산 우리은행)는 신인상을 받지 못했지만 성장과 발전을 거듭하며 MVP를 여러 차례 수상한 대표적인 선수다. 'MVP가 신인상보다 더 쉬웠어요'라고 말해도 되는 사례다.


지난 2월 24일 열린 2024~2025 여자프로농구 정규리그 시상식으로 시간을 되돌려보자.

우리은행의 정규리그 1위를 이끈 베테랑 포워드 김단비는 역대 6번째 만장일치 득표로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그는 득점·리바운드·블록·스틸상과 맑은기술 윤덕주상, 우수수비선수상, 베스트5 포워드까지 휩쓸며 지난 시즌 박지수(27·당시 청주 KB·현 갈라타사라이)에 이어 역대 2번째로 8관왕의 위업도 달성했다.

우리은행 김단비(왼쪽)와 이민지. /사진=한국여자농구연맹(WKBL)
우리은행 김단비(왼쪽)와 이민지. /사진=한국여자농구연맹(WKBL)
김단비는 수상 소감과 함께 신인상 후보에 올랐다가 홍유순(20·인천 신한은행)에게 밀려 상을 놓친 같은 팀 후배 이민지(19)를 위해 특별한 조언을 건넸다. 그는 "저도 신인상을 못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정규리그) MVP를 두 번 받은 선수가 됐다. 이민지가 신인상을 받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지 말고, 열심히 하다보면 이 자리에는 이민지가 있을 것이다. 저도 신인상이 아닌 MVP 이민지가 될 수 있도록 많이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신인상은 WKBL 최고의 스타로 우뚝 선 김단비도 받지 못한 상이다. 김단비는 2008년 신인드래프트 전체 2순위로 신한은행의 지명을 받아 프로 무대에 입성했고, 당시 '레알 신한'으로 불리던 팀 내에서 힘겨운 경쟁을 시작했다. 당시 배혜윤(36·용인 삼성생명)이 신인상을 차지했다.

김단비는 이후 에이스로 성장했고 2022~2023시즌을 앞두고 우리은행으로 이적한 뒤 상복까지 터졌다. 이적 첫 시즌에 통합우승을 일궈내며 프로 데뷔 16년 만에 처음으로 정규리그 MVP를 수상한 데 이어 챔피언결정전 MVP까지 휩쓸었고, 2023~2024시즌 챔프전 MVP 2연속 수상에 이어 2024~2025시즌 또 한 번 정규리그 최고의 별로 빛났다. 하지만 김단비의 챔프전 MVP 3연속 수상은 부산 BNK에 첫 우승을 내주면서 무산됐고, 트로피의 주인공은 BNK 가드 안혜지(28)였다. 수상의 영광은 개인 활약과 팀 성적이 최고 정점에서 제때 만났을 때 비로소 손에 거머쥘 수 있는 것이었다.

WKBL에서 '3대 상'을 모두 받은 선수는 박지수(2016~2017시즌 신인상, 2018~2019·2020~2021·2021~2022·2023~2024시즌 정규리그 MVP 4회, 2018~2019·2021~2022시즌 챔프전 MVP 2회)와 박혜진(BNK·2008~2009시즌 신인상, 2013~2014·2014~2015·2016~2017·2017~2018·2019~2020시즌 정규리그 MVP 5회, 2014~2015·2015~2016·2016~2017시즌 챔프전 MVP 3회), 변연하(BNK 코치·1999겨울시즌 신인상, 2001겨울·2003여름·2004겨울시즌 정규리그 MVP 3회, 2006여름시즌 챔프전 MVP) 등 3명뿐이다. 정규리그 MVP를 역대 최다인 7회나 수상한 정선민(부천 하나은행 수석코치)은 2007~2008시즌 신한은행의 통합 우승을 이끌고 챔프전 MVP까지 추가했지만, 여자프로농구가 출범한 1998여름시즌 이전이던 1993년 실업팀 SKC 여자농구단에서 성인 무대에 뛰어들어 WKBL 신인상을 받을 수 없었다. '농구 대통령' 허재와 KBL 레전드 가드 이상민, '국보센터' 서장훈이 KBL 신인상을 갖지 못한 이유와 같다.

흥국생명 김연경이 지난달 31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정관장과 프로배구 2024~2025 V리그 여자부 챔피언결정전 1차전에서 득점 후 환호하고 있다. /사진=뉴스1
흥국생명 김연경이 지난달 31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정관장과 프로배구 2024~2025 V리그 여자부 챔피언결정전 1차전에서 득점 후 환호하고 있다. /사진=뉴스1
여자프로농구에 이어 프로배구 V리그가 지난달 31일부터 챔피언결정전(5전 3선승제)을 치르고 있다. 특히 여자부가 은퇴를 예고한 '배구 여제' 김연경(38·흥국생명)의 은퇴투어에 이은 '라스트댄스'로 더욱 큰 관심을 끈다.

김연경은 역대 최고 선수를 일컫는 GOAT(Greatest Of All Time)가 잘 어울리는 한국 여자배구의 전설이다. 그는 은퇴 시즌에 정규리그와 챔프전 MVP를 독식할 수 있을까. 김연경의 소속팀 흥국생명과 정관장의 챔피언결정전 우승 향방과 더불어 관심이 집중되는 대목이다.

김연경은 정규리그 MVP를 이미 6차례(2005~2006·2006~2007·2007~2008·2020~2021·2022~2023·2023~2024시즌)나 수상했다. 이번 시즌에도 흥국생명의 정규리그 1위를 이끌며 유력한 수상 후보로 여겨진다. 그는 이번 챔피언결정전에서 앞선 두 시즌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고 2008~2009시즌 이후 16년 만에 정상에 다시 선다면 통합 MVP까지 노릴 수 있다. 그는 챔피언결정전 MVP도 2005~2006·2006~2007·2008~2009시즌 세 차례 받았다. 두 MVP 모두 최다 수상자다.

그는 지난달 31일 챔피언결정전 홈 1차전에서 60.87%(14/23)의 높은 공격 성공률로 팀 최다인 16득점을 기록하며 세트 스코어 3-0(25-21 25-22 25-19) 완승을 이끌었고, 지난 2일 홈 2차전에서도 22득점으로 3-2(23-25 18-25 25-22 25-12 15-12) '리버스 스윕' 승에 앞장서며 통합 우승에 성큼 다가섰다. 상대 블로킹을 뚫고 강타를 내리꽂은 것은 물론이고 수비 때는 몸을 던졌고, 후배들을 다독이는 역할도 도맡았다. 그는 2005~2006·2006~2007시즌 두 차례 달성했던 정규리그와 챔피언결정전 MVP의 동시 석권을 18년 만에 다시 이룰 가능성을 높여가고 있다. 흥국생명은 2018~2019시즌 이후 6년 만이자 통산 5번째 우승에 1승만을 남겨두고 있다. 3차전은 4일 오후 7시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열린다.

김연경은 해외 리그 생활을 제외하고 V리그에서 8시즌째 뛰고 있다. 그는 앞선 7시즌 동안 두 MVP 가운데 하나 이상을 언제나 가져갔다. 통합 MVP를 이룬 2005~2006·2006~2007시즌을 시작으로 2007~2008시즌 정규리그 MVP를 3연속 수상했고, 2008~2009시즌에는 유일하게 정규리그 MVP를 놓친 대신 챔피언결정전 MVP를 차지했다. 당시 GS칼텍스에서 뛴 베티아나 데 라 크루스(등록명 베띠)가 정규리그 MVP에 올랐다.

흥국생명 김연경(왼쪽에서 두번째)이 지난달 31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정관장과 2024~2025 V-리그 여자부 챔피언결정전 1차전에서  공격에 성공하자 기뻐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흥국생명 김연경(왼쪽에서 두번째)이 지난달 31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정관장과 2024~2025 V-리그 여자부 챔피언결정전 1차전에서 공격에 성공하자 기뻐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김연경은 이후 해외 무대로 떠났다가 2020~2021시즌 V리그로 복귀해 다시 정규리그 MVP를 받았고, 2021~2022시즌 중국 상하이 브라이트 유베스트에서 뛴 뒤 2022~2023시즌 다시 복귀해서도 두 시즌 연속 정규리그 MVP를 추가하며 여전히 녹슬지 않은 기량을 뽐냈다.

하지만 앞서 두 시즌 연속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하고도 계속 준우승에 그치면서 우승컵을 들지 못했고 챔프전 MVP의 영광도 다시 맛보지 못했다. 2022~2023시즌에는 한국도로공사에 1, 2차전을 이기고도 3~5차전을 내리 내줘 뼈아픈 역전패를 당했고, 2023~2024시즌에는 현대건설에 3전 전패로 무기력하게 물러났다.

김연경이 이번 챔프전에서도 정상에 오르지 못하면 그의 V리그 우승 기록은 2008~2009시즌에서 멈춘 채 은퇴를 맞게 된다. 반대로 통합 우승과 함께 통합 MVP 수상까지 달성한다면 선수생활의 대미를 그 무엇에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하게 마무리할 수 있다.

김연경은 V리그에 데뷔하던 2005~2006시즌 신인상과 정규리그 MVP, 챔피언결정전 MVP를 모두 휩쓸었다. 4대 프로스포츠에서 유일한 대기록이다. 신인상과 정규리그 MVP를 동시 석권한 2001~2002시즌 KBL의 김승현(은퇴·당시 동양 오리온스)과 2006년 KBO리그의 류현진(한화 이글스)도 이루지 못한 영역이다. 김승현은 당시 팀의 챔피언결정전 우승까지 이끌었지만 MVP는 외국인선수 마르커스 힉스의 몫이었다. 류현진은 2006년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했지만 삼성 라이온즈에 1승 1무 4패로 뒤져 준우승에 만족했고, 시리즈 MVP는 삼성 내야수 박진만(현 삼성 감독)이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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