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패→고작 1승인데... 왜 "역사에 남을 감동적 경기"라 했나, 눈물 겨운 정관장의 투혼 [대전 현장]

대전=안호근 기자 / 입력 : 2025.04.05 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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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장 선수들이 4일 흥국생명과 챔프전 3차전에서 승리한 뒤 함께 기뻐하고 있다. /사진=김진경 대기자
정관장 선수들이 4일 흥국생명과 챔프전 3차전에서 승리한 뒤 함께 기뻐하고 있다. /사진=김진경 대기자
"V리그 역사에 남을 감동적인 경기였다."

2연패 후 1승을 거뒀을 뿐이다. 우승까진 여전히 적팀보다 갈 길이 멀지만 고희진(45) 대전 정관장 감독은 V리그 역사까지 돌아봤다. 그만큼 정관장에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승리였다.


정관장은 4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열린 2024~2025 도드람 V리그 여자부 챔피언결정전(5전 3선승제) 3차전에서 흥국생명에 세트스코어 3-2(21-25, 34-36, 25-22, 25-19, 15-11) 풀세트 접전 끝에 대역전극을 써냈다.

플레이오프(PO)부터 치고 올라온 정관장은 11일 동안 하루 걸러 총 6경기를 치르는 강행군을 이어오면서도 시리즈를 4차전까지 끌고 갔다.

고희진 감독은 경기 전 "부상 선수들이 회복하고 치료하는데 중점을 두고 준비했다"며 "마지막 경기가 될 지도 모르는데 선수들이 힘들고 아프지만 투혼을 발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아웃사이드 히터 반야 부키리치(등록명 부키리치)와 미들 블로커 박은진이 발목 부상을 당한 뒤 플레이오프에서야 돌아왔다. 완전히 회복하기엔 부족한 시간이었지만 봄 배구를 위해 복귀를 앞당겼다. 세터 염혜선은 플레이오프 1차전 도중 무릎 통증이 재발했다. 리베로 노란은 PO 3차전 도중 등에 통증을 호소하며 교체됐고 챔프전 1차전에 결장했다. 염혜선과 부키리치는 점프 조차 100%로 뛰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고 노란 또한 움직임에 제한이 큰 상태였다.

득점 후 기뻐하는 부키리치(왼쪽)와 메가. /사진=김진경 대기자
득점 후 기뻐하는 부키리치(왼쪽)와 메가. /사진=김진경 대기자
그럼에도 정관장은 경기장을 가득 메운 홈 팬들 앞에서 기적적인 힘을 보여줬다. 1세트를 내준 정관장은 2세트 11차례 이어진 듀스 승부 끝에 패했고 그대로 우승팀이 결정될 것 같은 분위기였으나 대반전을 써나가기 시작했다.

3세트 놀라운 집중력으로 승리한 정관장은 4,5세트를 내리 따냈다. 염헤선은 1세트 무릎 통증을 호소하며 경기가 지연되기도 했고 부키리치는 적극적으로 공격을 펼치지 못하는 등 눈에 띄게 부사에 신음하는 장면들이 포착됐던 터라 더욱 놀라운 역전극이었다.

승리 후 미소를 가득 품고 인터뷰실로 들어선 고희진 감독은 "V리그 역사에 남을 감동적인 경기였다. 정상적인 몸 상태라면 그렇게 표현을 못할 텐데 챔피언 세트에서도 3-2 역전승을 거뒀다. 그것도 부상이 있는 선수들이 해냈다. 다시 이런 경기를 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명경기였다. 투혼에 박수를 보낸다"고 제자들에게 경외심을 나타냈다.

긴 듀스 승부 끝에 내준 2세트 후 이미 흥국생명의 우승이 확정된 것과 같은 분위기였다. 그렇기에 분위기를 반전해내기란 더욱 힘들었을 수밖에 없다. 고희진 감독은 "(2세트 후) 한 세트만 따내 보자고 했다. 이대로 끝내기엔 팬들도 조금 더 보고 싶어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며 "3세트 초반에 점수가 벌어지면서 역전도 당했지만 선수들이 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생겼다"고 돌아봤다.

놀라운 투혼이다. 주전 중 몸 상태가 완전한 선수가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고 감독은 주전 세터 염혜선에 대한 질문에 "안 좋다. 움직임을 보면 아실 것이다. (1세트에) 예외적인 선수 교체를 하면 경기를 못 뛰게 된다. 그래서 심판과 얘기를 했고 통증 때문에 못 움직이는 것이기에 조금만 시간을 보내면 뛸 수 있을 것 같아 시간을 지체했다"고 설명했다.

노란도 상황은 심각하다. 고 감독은 "노란은 정말 대단하다. 무남독녀 외동딸인데 운동을 하신 아버지가 그렇게 잘 키우신 것 같다"며 "많이 아픈데도 뛰겠다고 한 것부터 저런 투지와 정신력을 가진 선수를 만난 건 정말 감사하다는 말 밖에 할 수 없다"고 칭찬했다.

선수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고희진 감독(오른쪽). /사진=김진경 대기자
선수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고희진 감독(오른쪽). /사진=김진경 대기자
이날 3세트 이후 놀라운 반전을 쓸 수 있었던 건 부키리치의 공이 컸다. 부키리치는 무려 31점을 폭발하며 메가왓티 퍼티위(40점)를 도왔는데 고 감독은 "발목 인대 부상 후 점프도 그렇고 조금씩 몸이 돌아오는 것 같다"며 "어제 유일하게 공격 연습을 한 선수였다. 스스로 해야겠다고 하더라. 3세트부터 무시무시한 공격을 펼쳤다. 부키리치도 챔피언이 무조건 돼야 한다고 하더라. 메가와 함께 4차전에서도 좋은 활약을 펼쳐줄 것"이라고 기대를 나타냈다.

고 감독은 온전치 않은 몸 상태와 함께 자신감 또한 하락한 부키리치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나타냈다. 1세트 부키리치는 자신에게 올라온 공을 강하게 때리기보다 슬쩍 넘기기도 했는데 고희진 감독은 과감히 공격을 펼칠 것을 주문했다. 고 감독은 "부키리치가 범실을 15개 했는데 그런 심리적 부담이 있었다"며 "범실을 해도 좋으니 때리라고 했다. 상대에게 넘겨주면 (김)연경이가 컨디션이 좋기 때문에 기회를 주기보다 우리 손으로 끝내자고 두려움을 없애줬다"고 설명했다.

주포 메가도 무릎 통증과 부상 선수들로 인한 부담 증가가 독이되고 있다. PO 때부터 많은 공격 점유와 함께 지쳐가고 있는 것. 고 감독은 "무릎이 안 좋다. 계속 남자친구가 와 있는데, 계속 이름을 언급하며 '남자친구가 한 경기만 보고 가면 아쉽지 않겠냐'라며 한 세트만 더하자고 했더니 살아나더라. 사랑의 힘은 대단한 것 같다"고 미소를 지었다.

2세트에 블로킹에 고전하기도 했고 두 세트 연속 서브 라인 범실이라는 예상치 못한 실수를 저질렀다. 그만큼 몸도, 체력도, 부담도 가중돼 있는 상황이다. 고 감독은 "무릎이 안 좋아서 지친다. PO 때 얼마나 많은 공격을 때렸나"라면서도 "정신력은 대단한 것 같다. 스스로 괜찮다고 하는 그런 선수를 언제 만나 보겠나"라고 고마움을 표했다.

3차전 값진 승리를 챙겼음에도 여전히 선수들의 피로도는 나날이 쌓여가고 있어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고 감독은 4,5차전에 주전 선수들이 모두 출전하느냐는 질문에 "그날 돼 봐야 알 것 같다. 그날 되면 숨기지 않고 말씀 드리겠다"고 걱정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인터뷰 도중 환히 웃는 부키리치(왼쪽부터)와 노란, 염혜선. /사진=안호근 기자
인터뷰 도중 환히 웃는 부키리치(왼쪽부터)와 노란, 염혜선. /사진=안호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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