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 김연경 문성민 은퇴, '스타부재' 韓 배구에 숙제가 생겼다 [V-리그 결산 ②]

안호근 기자 / 입력 : 2025.04.11 0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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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배구의 두 큰 별이 동시에 자취를 감추게 됐다. 세계 배구 역사를 통틀어도 손꼽히는 '여제' 김연경(37)과 '월드스타' 문성민(39)이 유니폼을 벗었다.

올 시즌 막판 은퇴 의사를 밝힌 김연경은 '라스트댄스'의 주인공이 됐다. 압도적인 실력으로 팀에 정규리그에 이어 챔피언결정전 우승 트로피까지 안겼고 역대 2번째 만장일치 챔프전 최우수선수(MVP)를 수상하며 최고의 엔딩을 썼다.


2005~2006시즌 데뷔와 함께 인천 흥국생명에 우승 트로피를 안기며 신인상과 정규리그, 챔프전 MVP를 모두 석권한 김연경은 4시즌 동안 3회 우승을 이끈 뒤 해외 무대 진출에 나섰다.

JT 마블러스(일본)-페네르바체(튀르키예)-상하이 브라이트 유베스트(중국)를 거치며 수많은 우승 트로피와 함께 개인상을 독식한 김연경은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도 한국 여자배구를 4강으로 이끌며 MVP를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만큼 세계 무대에서 김연경의 위상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2020~2021시즌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김연경은 이후 중국으로 잠시 건너갔던 2021~2022시즌을 제외하면 3시즌 모두 맹활약하며 정규리그 MVP를 수상했지만 챔프전에선 준우승에 모두 고배를 마셨다.


은퇴를 선언했고 김연경을 상대하는 팀에서도 '은퇴투어'를 마련했다. 팬들도 마지막을 기약한 김연경을 보기 위해 홈과 원정을 가리지 않고 더 적극적으로 경기장을 찾았다.

챔프전 1,2차전 연승을 이끌며 손쉽게 우승을 가져가는 듯 했지만 원정에서 3,4차전을 내줬고 5차전 34점 맹활약과 함께 막판 몸을 날리는 결정적 디그와 함께 팀의 5번째 우승을 선사했다.

페네르바체 시절부터 김연경과 함께 했던 마르첼로 아본단자 감독은 "왜 한국 역사상 최고의 선수인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고 적장인 고희진 감독도 경기 전 "다시는 나오기 힘든 한국 배구의 아이콘이자 한국 스포츠에서도 내로라하는 인물"이라며 "한국 배구를 세계적으로 알리는 데 큰 힘을 보탰다. 배구인의 한 사람으로 박수를 쳐주고 싶고 너무너무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경기 끝나고 결과와 상관없이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다"고 말했다.

김연경은 "원래 원했던 모습으로 은퇴를 하게 됐다"며 "아직까지 많은 분들이 정상에 있고 잘하는데 왜 은퇴를 하냐고 하시는데 이게 내가 상상한 은퇴의 모습이었다"고 박수 칠 때 떠나게 된 것에 대해 만족감을 표했다.

문성민은 최근 몇 시즌 세대교체와 에이징 커브 여파 속에 챔프전에선 함께 웃지 못했지만 의미 있는 마무리를 했다. 챔프전을 앞두고 출전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며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은퇴식을 했음에도 선수들의 훈련 파트너를 자청했고 우승 후 후배들은 문성민을 헹가래치며 존중의 뜻을 나타냈다.

주장 허수봉을 비롯한 후배들에게 동기부여를 해주는 등 경험 많은 베테랑으로서 갖가지 조언을 전했다. 허수봉은 우승 직후 "끝나니까 다음 시즌엔 코트에 성민이 형이 없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며 "우승으로 꼭 보답해드리고 싶었다. 어릴 때 주전으로 이끌면서 우승을 시켜줬던 생각도 많이 났다. 성민이 형이 내가 안 뛴 시리즈에서 2번 우승을 안겨줬다. 비록 한 번이지만 트레블로 보답했다는 게 뿌듯하다. 많은 가르침을 주셔서 우승을 이끌 수 있었다"고 말했다.

FIVB 21세 이하(U-21) 세계선수권 득점상을 수상하며 남다른 떡잎임을 증명했던 문성민은 2008년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해 2008~2009시즌 서브상을 수상할 정도로 강력한 서브를 무기로 해외무대에서도 활약했고 튀르키예 무대까지 거쳐 2010년 현대캐피탈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원클럽맨으로 활약하며 두 차례 정규리그 MVP와 챔프전 MVP를 한 차례 수상한 문성민은 V-리그 정규리그 통산 득점 3위(4813점), 포스트시즌 득점 2위(662점), 로 굵직한 기록도 남겼다. 국가대표로서도 오랜 기간 맹활약을 펼쳤다.

전설들의 마지막 길은 단순히 아쉬움에서 그치지 않는다. 굵직한 스타들의 부재는 V-리그의 미래를 걱정케 만든다. 특히 여자배구는 당장 다음 시즌부터 흥행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김연경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김연경은 물론이고 문성민과 같은 스타도 다시 나오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렇기에 더 멀리 바라보고 또 다른 김연경과 문성민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중요한 시점이다.

김연경의 마지막 말에서 한국 배구가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김연경은 "한국 배구 미래에 대해 걱정은 항상 했다. 국제대회에서 성적이 좋지 않았고 계속 침체기를 겪다보니 LA 올림픽의 가망도 크다고 볼 수 없다"며 "체계적 시스템, 장기적 플랜으로 잘 키워내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잠재력이 있는 선수들은 많지만 어떻게 발굴하고 키워가야 할지는 많은 관계자와 지도자들이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나도 배구 쪽에서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후배들에 대한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김연경은 "요즘에 어린 선수들과 얘기해보면 눈에 잘 보이는 화려한 걸 좋아한다"면서 "그런 것보단 눈에 안 보이는 기본기와 같은 것들을 잘 다지면 좋을 것 같다. 그런 건 시기가 있어 넘어가면 다지기 어렵다. 그 시기에 맞게 할 수 있는 게 있다. 기본기에 집중하면 좋은 선수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연경이 챔프전 우승 후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안호근 기자
김연경이 챔프전 우승 후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안호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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