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는 감독→'타율 0.538' 백업포수의 미친 존재감, "증명하고 싶었다" 간절함이 통했다 [인천 현장]

인천=안호근 기자 /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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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G 포수 조형우가 25일 키움전 승리 후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안호근 기자
SSG 포수 조형우가 25일 키움전 승리 후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안호근 기자
"(조)형우에게는 미안함이 있었죠."

이숭용(54) SSG 랜더스 감독은 주전 포수의 부상 이후에야 제대로 된 출전 기회를 갖게 된 백업 포수에게 미안함을 나타냈다. 그리고 조형우(23)는 자신이 얼마나 잘 준비가 돼 있는지를 완벽하게 증명해냈다.


조형우는 25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키움 히어로즈와 2025 신한 SOL뱅크 KBO리그 홈경기에 7번 타자 포수로 선발 출전해 8회말 결승 솔로 홈런을 터뜨리며 팀에 4-3 역전승을 안겼다.

2021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1라운드 8순위로 SK 와이번스(SSG 랜더스 전신)의 지명을 받았지만 이재원(37·한화 이글스), 이지영(39) 등 베테랑들에 밀려 많은 기회를 얻지 못했다.

'팀 리모델링'이라는 목표와 함께 자리에 오른 이숭용 감독은 지난 시즌을 마치고도 19경기 출전에 그쳤던 조형우에게 미안함을 나타내기도 했다. 팀의 미래를 이끌어갈 포수임에도 5강권 경쟁을 펼치느라 생각보다 많은 기회를 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올 시즌을 앞두고는 이전보다 확실히 더 많은 기회를 주겠다고 공언했지만 역시나 쉬운 일은 아니었다.

25일 선발 포수로 나선 조형우가 경기 전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사진=SSG 랜더스 제공
25일 선발 포수로 나선 조형우가 경기 전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사진=SSG 랜더스 제공
지난 20일 이지영이 주루 도중 햄스트링 부상을 입었고 조형우에겐 자연스레 기회가 생겼다. 이후 4경기 연속 포수 마스크를 쓴 조형우는 그동안 타격폼까지 바꿔가며 갈고 닦은 기량을 마음껏 뽐내기 시작했다. 지난 22일 KT 위즈전 적시타를 날렸던 그는 23일엔 데뷔 후 최초로 4안타 경기를 치렀고 시즌 마수걸이 홈런까지 날렸다. 24일에도 안타를 신고하며 뜨거운 타격감을 이어갔다.

25일 경기에서도 포수 마스크를 썼다. 경험 많은 베테랑 포수라고는 하지만 이지영은 시즌 초반 타율 0.231(65타수 15안타) OPS(출루율+장타율) 0.636에 그치고 있었다. 왜 이제야 기회를 줬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사령탑은 다시 한번 미안함을 나타냈다. 경기 전 만난 이숭용 감독은 "형우에게는 조금 미안한 감이 있었다. 그런 부분에서 감독을 신뢰하는 것 같이 너무 잘해주고 있다"며 "가을부터 준비를 굉장히 많이 했다. 이제 노력한 결과가 나오는 것 같아서 감독으로서 정말 기분이 좋다. 본인도 조금 자신감이 붙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사령탑의 신뢰 속에 더욱 불타올랐다. 2회 2루수 뜬공, 4회 우익수 뜬공으로 물러섰던 조형우는 팀이 1-3으로 끌려가던 6회말 2사 1루에서 오석주를 상대로 9구까지 가는 풀카운트 승부에서 몸에 맞는 공으로 출루했다. 피했어도 볼넷으로 걸어나갈 수 있는 공이었지만 피하지 않고 확실한 사(死)구로 걸어나갔다.

경기 후 조형우는 "일단 출루를 하고 싶었다. 공이 (높게) 뜨자마자 볼이라고 생각했는데 커브가 휘어져 들어올 것이라고 생각하다 보니까 저도 모르게 안 피하고 그렇게 했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출루에 대한 간절함 때문에 잠깐의 고통을 감수했다.

조형우가 6회말 풀카운트에서 피하지 않고 공을 맞고 있다.
조형우가 6회말 풀카운트에서 피하지 않고 공을 맞고 있다.
김성현의 우전 안타 때 2루에서 홈까지 파고 들고 있는 조형우(왼쪽).
김성현의 우전 안타 때 2루에서 홈까지 파고 들고 있는 조형우(왼쪽).
이후 2루까지 향한 조형우는 김성현의 2타점 적시타 때 전력질주해 홈을 파고 들었다. 3-3 동점에서 맞이한 8회말 타석에선 박윤성의 초구 시속 134㎞ 커터를 강하게 받아쳐 좌중월 결승 솔로포를 날렸다. 시즌 2번째 홈런. 시즌 타율은 0.348(23타수 8안타)에 달하고 주전으로 나서기 시작한 최근 4경기에선 타율 0.538(13타수 7안타) 2홈런 3타점으로 더 뜨거운 방망이를 휘두르고 있다.

조형우는 "일단 경기를 나가려면 제가 잘해야 하기 때문에 매 타석, 공 하나 하나, 포수 수비를 나가서 받을 때 저의 장점을 보여드리기 위해서 경기 상황을 그리면서 타격이나 수비나 노력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타석에 들어서기 전 강병식 코치의 족집게 과외도 있었다. "커터도 직구 타이밍에 칠 수 있다고, 앞으로 던져서 치라고 말씀해주신 걸 생각하고 있었다"며 "직구 먼저 생각하고 있다가 코치님 말씀처럼 던지면서 치려고 했던 게 직구 타이밍에 걸렸다. 원래도 타석 전에 얘기를 해주시는데 오늘은 대기 타석에 있을 때도 와서 한번 더 얘기해주시더라. 강병식 코치님 덕에 홈런을 친 것 같다"고 공을 돌렸다.

맞는 순간 홈런을 직감하고 세리머니를 했으나 이내 확신이 사라졌는지 주루에 집중했다. 조형우는 "맞자마자 (넘어갔다고) 느꼈는데 타구가 생각보다 너무 높게 떠서 안 넘어갈 것 같아서 뛰었고 안 넘어간 줄 알고 2루에서 실망하고 있었는데 넘어갔다고 해서 기분이 좋았다"며 "세리머니를 하다가 아차 싶었는데 다행이었다. 넘어갈 줄 알았으면 시원하게 해버릴걸 그랬다"고 미소를 지었다.

감독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 조형우는 "작년부터 감독님께서 그렇게(미안하다고) 얘기하셨는데 저는 감독님께서 기회를 주실 때 제가 왜 경기에 나가고 기회를 받는지 증명하고 싶었다"며 "여태 못 하고 있다가 지금이나마 그런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 좋다"고 밝혔다.

조형우가 8회말 솔로 홈런을 날리고 베이스를 돌고 있다.
조형우가 8회말 솔로 홈런을 날리고 베이스를 돌고 있다.
조형우(가운데)가 결승 홈런 이후 더그아웃에서 동료들의 격한 축하를 받고 있다.
조형우(가운데)가 결승 홈런 이후 더그아웃에서 동료들의 격한 축하를 받고 있다.
더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비시즌 기간 레그킥을 버리고 토스텝 자세로 타격폼을 바꿨다. 파워가 덜 실릴 것이라는 불안도 있었지만 꾸준히 밀고 나갔고 이젠 자신의 옷으로 완벽히 소화를 해내고 있다.

조형우는 "어쨌든 정확히 맞아야 홈런도 나온다고 생각을 해서 작년 가을부터 타격 자세를 바꿨다"며 "훈련 때도 타구가 안 나가고 했지만 마무리 캠프 때부터 타격 코치님께서도 '신경 안 써도 된다, 경기 때는 중심에 맞으면 더 멀리 나갈 수 있다. 흔들리지 말고 하던 거 쭉 하면 좋은 결과 있을 것이다'라고 말해주셨다"며 "어려웠는데 최근 하루에 4타석씩 나가고 좋은 결과까지 나오다보니 조금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어렵게 잡은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생각 뿐이다. 조형우는 "일단은 저에게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꼭 잡고 싶었고 누구에게 뺏기고 싶지도 않다"며 "아직 그런(주전이라는) 생각은 안 들지만 확신이 든다면 더 책임감을 갖고 팀에 매 경기 승리할 수 있게 도움이 되는 선수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3경기에서 2홈런을 날린 조형우는 많은 타석에 나선다면 장타에 대한 자신도 있다며 "목표는 두 자릿수 홈런"이라고 소박한 계획도 전했다.

조형우(오른쪽)가 마무리 투수 조병현과 승리를 지켜낸 뒤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조형우(오른쪽)가 마무리 투수 조병현과 승리를 지켜낸 뒤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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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호근 | oranc317@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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