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하게 하자" 마음가짐 바꾼 '36세 방출 이적생', 연장 결승타→데뷔 첫 만루포 '인생경기'라는 선물을 받았다

인천=안호근 기자 /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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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움 오선진이 27일 SSG전 결승 만루홈런을 날려 팀에 승리를 안긴 뒤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안호근 기자
키움 오선진이 27일 SSG전 결승 만루홈런을 날려 팀에 승리를 안긴 뒤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안호근 기자
오선진(36·키움 히어로즈)이 인생 경기를 펼쳤다. 데뷔 이래 가장 인상적인 활약으로 팀에 짜릿한 2연승을 안겼다. 은퇴를 고민하며 깨달은 '내려놓기'가 비결이 됐다.

키움은 27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SSG 랜더스와 2025 신한 SOL뱅크 KBO리그 방문경기에서 선발 하영민의 6이닝 1실점 호투와 오선진의 만루 홈런 활약으로 7-1 대승을 거뒀다.


전날에 이은 맹활약이다. 26일 SSG전에서는 경기 중반 대수비로 출전해 8회초 2루타를 치고 나가 송성문의 안타 때 동점 득점을 해 경기를 연장으로 끌고 갔고 10회초 결승타를 날리며 팀의 3연패를 끊어냈다.

이날은 3회초 1사에서 2사 만루에서 타석에 들어섰다. 오선진은 볼카운트 2-2에서 김광현의 5구 시속 115㎞ 커브를 때려 좌측 담장을 넘기는 그랜드슬램을 터뜨렸다. 시즌 첫 홈런이자 2022년 6월 26일 대전 한화전(삼성 소속) 이후 무려 1036일 만에 나온 아치였다. 개인 통산 첫 만루홈런이기도 했다. 16시즌 동안 19홈런. 1년에 한 번꼴로 터지는 홈런을 만루홈런으로 장식했다.

더구나 상대는 에이스 김광현이었다. 불의의 일격에 충격이 컸는지 4회에도 실점한 뒤 강판됐고 다시 2사 만루에 타석에 선 오선진은 몸에 맞는 공으로 팀의 7번째 점수를 채웠다. 5타점은 개인 한 경기 최다 타점 기록이었다. 종전 기록은 2019년 5월 9일 한화 이글스 소속으로 당시에도 문학 SSG전에서 올린 4타점이었다. 인생경기를 펼쳤다.


오선진이 만루홈런을 날리고 타구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키움 히어로즈 제공
오선진이 만루홈런을 날리고 타구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키움 히어로즈 제공
경기 후 홍원기 감독은 "공격에서 3회 오선진의 만루홈런으로 분위기를 가져왔고, 4회 최주환과 카디네스의 연속 타점, 오선진 밀어내기 타점으로 승기를 확실히 잡을 수 있었다"고 베테랑의 활약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2008년 한화 이글스에서 데뷔해 2021년까지 원클럽맨으로 뛰던 오선진은 이성곤과 1대1 트레이드로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한 뒤 2023년 자유계약선수(FA)로 1+1년 최대 4억원에 다시 친정팀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지난해 35인 보호 선수 명단에서 제외됐고 2차 드래프트에서 롯데 자이언츠의 지명을 받아 이적해 뛰었다. 26경기에서 22타석만 소화한 오선진은 시즌 종료 후 방출 통보를 받았다.

그때 키움이 손을 내밀었다. 오선진은 지난 1월 스프링캠프 출국 인터뷰에서 "안 되면 다른 쪽을 알아보려고, 80~90% 정도 넘어간 상태였다"고 말했다. 그만큼 절박했던 상황에서 키움이 유일하게 영입 의사를 나타냈고 지난해 1억원에서 60% 삭감된 연봉 4000만원에도 흔쾌히 도장을 찍었다.

오선진에게 올 시즌은 보너스와도 같았다. 전날 결승타를 친 뒤에도 "경쟁이라기보다는 매 경기 나가는 데 있어 행복함을 느낀다. 경기를 안 나가고 더그아웃에서 보고 후배들에게 파이팅을 해주는 것도 행복하다"며 "팀에서 생각하는 제 위치를 스스로도 잘 알고 있고 매 경기 그 부분을 착실히 해내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날 다시 한번 조연이 아닌 주연으로서 팀에 연승을 선사했다. 인생경기를 펼치고도 오선진은 덤덤했다. "일단 기쁘다. 더 행복한 날"이라면서도 "제가 잘하려고 하는 건 아니고 제 위치에서 매일 (제 역할을) 하려고 하고 있기 때문에 '또 이런 날도 있구나' 정도로만 생각한다"고 말했다.

오선진(왼쪽)이 홈런을 날리고 박정음 코치와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사진=키움 히어로즈 제공
오선진(왼쪽)이 홈런을 날리고 박정음 코치와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사진=키움 히어로즈 제공
올 시즌 22경기만 나서고도 벌써 지난해 타석수를 넘어섰다. 38타석에 들어선 오선진은 타율 0.313(32타수 10안타) 출루율 0.405, 장타율 0.500, OPS(출루율+장타율) 0.905로 맹활약 중이다. 그럼에도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데뷔 첫 안타와 홈런에 이어 또 다시 기념할 공이 생겼다. 0-0 2사에서, 그것도 김광현의 까다로운 코스의 커브를 받아 넘겼다. 그만큼 타격감이 좋다는 방증이다. 오선진은 "개인적으로 나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있다"며 "타석에서 투수 공을 많이 보려고 하고 있고 쉽게 죽지 않으려고 하는 모습에서 행운이 따르는 안타들도 나오는 것 같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비결은 마음가짐에 있다. 은퇴를 한 차례 고민하는 과정을 통해 더 편하게 야구를 대하기로 했다. "올 시즌은 쫓기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타석에 나가서 끈질기게 투수랑 승부를 하지만 누군가에게 보여주려고 하는 야구를 하려다보면 괜히 쫓기는 것 같아서 올해는 편하게 내가 할 것만 하자는 생각으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만큼 이전까지는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이다. "잘하려고 하는 마음 때문이었던 것 같다. 새로운 팀에서, 롯데 가면서도 더 잘해야지, 보여줘야지 이런 마음이 강했던 것 같다. 그게 작년에 롯데에서 시즌을 치르면서 후회가 되더라"며 "야구는 내가 하는 건데 너무 잘하려고 하고 그랬나라는 생각이 강했다. 올해는 제가 준비한 것만 야구장에서 보여주자라는 생각으로, 최선만 다하자는 생각으로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렇기에 더욱 이날 활약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2경기 연속 결승타를 쳤지만 다음날이 휴식일이라 아쉽지 않느냐는 질문에도 "(그런 마음은) 전혀 없다. 내일 하루는 충전하고 다음주를 시작할 수 있으니까 괜찮다"며 "푸이그와 이주형은 돌아와서 중심 타선에서 해줘야 되는 선수들이다. 쉬고 와서 힘을 보태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연승을 시작했기 때문에 더 길게 이어가다가 주형이나 푸이그가 오면 더 시너지 효과가 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선진(가운데)이 홈런을 날리고 선수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사진=키움 히어로즈 제공
오선진(가운데)이 홈런을 날리고 선수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사진=키움 히어로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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